적막했던 5월 어린이날, 용산을 찾았다. 울트라감자생각


 재개발이 불러온 죽음, 

         용산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지고 있는가!

 [한겨레] 김명진 기자 ‘철거민 참사 부른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5월이다. 용산 국제빌딩 앞에 길게 자리 잡은 포장마차는 5월이면 가장 붐비는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소주 한 병에 왕 계란말이가 1만원밖에 하지 않는 ‘진아네’ 포장마차는 단연 인기가 높았다. 너무 덥지도 않고, 낮 동안의 더위를 시원한 바람으로 촉촉이 적시는 밤에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이라면, 5월과 소주와 용산 포장마차는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용산의 포장마차 거리는 용산 국제빌딩에서 근무하는 삼일회계법인, 국제상사, 삼성경제연구소 직원들을 비롯해, 용산역을 거쳐 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었다. 그 공간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또 그 시간동안 서로를 위로 하는 공간이었다. 주위에 불뚝불뚝 솟아난 주상복합 건물들과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 공간 자체가 지닌 깊은 매력은 오히려 ‘용산의 주인은 너희가 아니라, 바로 나다’라고 말해주는 듯 했었다.

  

 아침부터 동요가 TV를 통해 울려 퍼지던 어린이 날, 난 그날의 기쁨을 뒤로 한 채 신용산역 2번 출구에 섰다. 바로 그곳에서 50m 남짓 떨어진 거리가 옛 포장마차가 있는 곳이다. 그날 따라 날씨가 무척 좋았다. 한강시민공원에 나들이 나선 사람들의 기쁜 표정과 달리, 나의 표정은 바로 굳었다. 국제빌딩 길가에 길게 늘어선 전경버스들과 무표정하게 열을 맞춰 걷는 전경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 곳 용산에서는 바로 100여일 전, ‘용산참사’로 알려진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공방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으로 머물고 있으며, 당시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는 하염없는 유가족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2번출구에서 100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해, 신용산역 2번출구에서 50M 떨어진 거리서부터 시작하는 포장마차가 끝나는 지점은 바로 사건이 일어난 그 건물까지이다.


 용산참사가 있기 전부터 재개발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하는 식당과 호프집, 구멍가게들은 이제는 떠나야한다는 아쉬움과 과연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걱정이 교차했었다. 당시 단골집이었던 쭈구미집 아주머니는 명함을 하나 건네주시며, 이렇게 말하셨었다.

 “우리가 가봐야 뭘 하겠어. 그냥 하던 장사인 순대국이나 팔아야지. 여기 용산에서 20년 넘게 있었으니 단골도 많고. 아무래도 멀리가진 못하고, 삼각지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멀지 않으니까 연락하고 오도록 해.”

 사실 그 뒤로 아주머니께 어떻게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다. 사실 단골이긴 했으나, 거리가 좀 멀어지면서 점심시간 그 곳까지 가긴 여간 쉽지 않으니까. 6년 전부터 용산을 자주 왕래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그곳에 거의 매일을 지나다녔다. 신용산역 2번 출구를 나와 사건현장이 있는 남일당 빌딩을 지나면 길이 끝나는 지점 바로 건너편에 횡단보도가 있고 그 횡단보도에서 왼편을 바라보면 합기도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 3층이 ‘대학희망’ 사무실이 있었다. 청소년 단체 사무실에 얹혀서 방 한 귀퉁이를 우리의 공간으로 사용했기에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는 당연시 용산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하는 식당들이나, 포장마차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골식당과 술집도 있었고, 지나가도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남일당 건물 앞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 돌아가신 레아 호프집 사장님의 맞은 편 꽃집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5000원으로 여자 친구에게 줄 300일 기념 꽃다발을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집은 5800원밖에 하지 않은 치킨을 팔아, 일주일에 1~2번 찾아가게 했었고, 그 곳에서는 후배와 대학희망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회장을 결심하는 술도 먹였던 기억도 남는다. 그리고 그 옆 지물포에서는 우리 사무실 장판을 새로 꾸미는데 싼 값에 장판을 주신 아저씨도 계신다. 그리고 지물포 건너편에 신진슈퍼마켓 아저씨도 50원 할인 해주시는 아이스크림으로 무척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6년이란 세월 속에 나 역시 용산 철거 문제가 이야기될 때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인식했었고, 그 공간을 떠난다는 세입자들의 고통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겨레21 2009.02.20 제748호 사진

 무표정한 전경들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들의 뒷통수를 쳐다보며 침을 뱉는다. 주머니 속 담배를 한 대 물고 길을 따라 걷는다. 참 많이 변했다. 용산이란 이름은 그대로인데 내가 알던 용산은 사라졌다. 철거로 인해, 펜스들이 쭉 이어져 있었고 건물들이 무너진 잔해를 숨기는 듯 가리고 있었다. 펜스의 장막 뒤로 살짝 보이는 건물들의 잔해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 이 공간은 그래. 내가.......’ 침착하고 싶었다. 멀리서 이상하게 지켜보는 무전기를 든 사내들에게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길을 쭉 걷다보니, 건물 틈 사이로 주상복합 건물들이 보인다.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다. 그 골목 끝에는 레아 호프집(고 이상림 할아버지가 하시던 술집) 자리가 있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이 바로 사건이 일어난 남일당 건물이다. 그 건물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현수막과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현수막이 같이 걸려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그들은 아직도 그 옥상에 갇혀 있는 듯하다. 그 건물 아래 남일당 자리에는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길가에 있던 분향소는 어느덧 그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 옆에는 휴게실 비슷하게 유가족들과 농성하시는 분들의 생활도구와 음식가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이 붓으로 그려진 듯한 현수막이 세로로 길게 하나씩 늘어져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직 상복을 입고 계신 가족 분들이 몇몇 보였고, 전철연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다들 이 동네에서 세를 얻어 자영업을 하셨던 분들이고, 한 두 번씩은 내가 이분들이 해주시는 음식이나, 물건을 먹거나 샀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서있는데 짧게 머리를 단발로 자르신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단골로 가는 가게의 사장님이셨다. 흔히 우리들에게는 ‘명희이모’라 불리는 야콘냉면집 사장님은 전철연 조끼를 입고 계셨다. 사무실 근처에 가장 값싼 고깃집이기도 하고 너무 밝게 우리를 맞이해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고깃집은 거의 가질 않고 야콘냉면집을 갔다. 생고기 1인분에 3500원으로 주문을 하고 마지막에 먹는 야콘 물냉면의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1년도 지나지 않은 오늘, 예전과는 달리 수척해지신 얼굴로 분향소 앞에 앉아계셨다. 밝은 미소와는 달리 그늘진 얼굴이셨다. 지금은 투쟁에 중심에 서 계신 듯 했는데,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이런 데에는 관심을 갖는 분은 아니셨을 것이다. 명희이모께 말을 걸고 싶어 다가가는데 왠지 피하시는 눈치셨다. 나도 뒷걸음치다 멀리서 지켜봤다.


 용산참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다. 사건은 검찰에 의해 도심 자살폭탄테러처럼 판결이 났고, 그에 따라 희생된 철거민들과 당시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이 구속 상태다. 석연치 않은 판결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면서 아직도 시신들은 장례식장 냉동 창고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0여일이 지났음에도 그 영혼들은 아직도 용산 남일당 건물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용산 참사가 있었던 1월 20일 이후 몇 가지 의혹들이 제기 되었다. 그 의혹을 제기하면 다음과 같다.


1. 망루를 쌓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경찰특공대를 도입해서 사태진압을 서둘러야 했는가.

2. 망루 안에 인화물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진압을 시도했는가.

3. 세입자들이 대화를 시도하고 많은 보상을 원한 것도 아닌데, 그들의 얘기는 묵살되었나.


이런 의혹들에 대해 내심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 수사발표 중 풀리지 않은 그 배후의 의혹들에 대해서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제2의 용산사태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월 20일자 한겨레21은 모든 내용을 용산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웠다. 한겨레21은 "용산참사의 배후에는 서울 용산구 재개발 4구역 일대에서 폭력조직, 재벌 계열 건설사, 지방자치단체, 지역 토건세력이 한데 뒤엉켜 각종 불법·탈법을 벌인 결과"라고 말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재개발조합은 2006년 11월 (주)파크앤시티와 도시환경정비사업 업무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추진위 승인에는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 동의는 3년 전인 2003년부터 추진이 되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설립되고 동시에 정비업체로 서울시에 등록한 것은 2005년이 되어서이다. 다시 말해 무허가 상태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인감서류를 만들어왔고 회사 창립은 2년뒤에 설립한 꼴이다. 또한 이 회사의 사장은 20대의 이 아무개씨인데, 이 회사의 운영은 실제로 이 아버지가 운영을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제2대 용산구의원 출신이다. 그리고 현재 용산구청장인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제1,3대 구의원을 지냈다. 이 둘은 현재 용산구 충청향우회 회장이 박장규 구청장인데, 이 회장은 같은 모임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용산구청 직원은 “박 구청장은 외부 행사 같은 것을 마친 뒤에는 이 회장이 용산구 한강로에서 운영하는 ㅅ숯불갈비에 직원들을 데려가 자주 회식한다”고 말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평 645㎡(약 195평) 규모인 ㅅ숯불갈비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주)파크앤시티가 2007년 4월 매입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다. 또한, 2006년 9월과 2008년 4월, 용산구청에서 근무해온 2명의 도시관리국장이 관내 공사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된 바 있다. 구청장과 정비업체 회장의 ‘친분 관계’가 세간의 의혹을 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겨레21>은 재개발 분야 전문가로 서울시청과 용산구청에서 일하던 간부 공무원이 (주)파크앤시티 임원으로 옮겨간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삼성물산은 이번 사태와 무관하다고 주장을 한다. 용산 4구역 개발은 삼성물산 등 3개사를 시공사인데, 3개 회사의 지분 비율은 삼성은 40%, 포스코와 대림은 30%이다. 삼성물산의 한 직원은 용역업체 호람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이시기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등 삼성물산의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 철거용역을 따낸 ‘협력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봉 3천만원을 받는 촉망받는 사원이 용역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이런 정황들은 이 용산사태가 단순히 철거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에는 자본가들의 거대한 카르텔이 숨겨져 있었으며, 이에 따라 자영업을 해왔던 세입자들이 그 피해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왕배교수의 '계급'과 '국가' 군력의 텍스트로서의 도시공간의 한 대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교환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시간과 공간은 자본가들에게 의해 용의주도하게 조직화되었다. 정확한 시간의 측정과 정확한 공간적 척도는 자본이윤의 형성에 직접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용산의 사태와 비교해보면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진척시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시간의 단축은 이윤창출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은교수의 사당동 재개발지역에서의 현장연구를 살펴보면, "재개발을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가옥의 철가가 최우선 과제이며 사당동의 경우 이 철거는 시장기제와 공권력에 의한 강제철거를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본다."라고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또한 "1988년도에도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철거가 이뤄지는데 경제적 여건상 이주가 거의 불가능한 가구들만이 강제철거의 위협을 예상하면서 잔류하게 되는데, 시장기제와 강제철거는 보완적 기능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20년 전의 연구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바로 자본권력의 이윤이 어떻게 도심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일 수도 있다. 그는 "공간이 단지 환경이라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전의 도시사회학과는 다른 '새로운 도시사회학'의 패러다임을 제공하였다"며 "도시를 사회와 공간이 합류하는 사회적 공간, 그리고 집합적 소비단위로 규정하고 나옴으로써 '도시'의 재개념화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도시 사회관계는 제계급간의 관계가 도시공간을 둘러싸고 현상화한 것이라는 입장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도시개발/재개발은 자본축적의 논리가 관철되는 장이며 도시개발/재개발이란 토지사용을 둘러싼 계급갈등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도시의 재개발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의 개발을 통한 자본가들의 이윤추구가 작용되고 이에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에 함께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한다. 그래야만이 도심에서 벌어진 공권력의 야만적인 진압과 이에 따른 세입자들의 죽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제기한 3가지 의혹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 의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사건현장인 남일당 빌딩을 걸어서 삼각지역으로 쭉 걸었다. 10분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삼각지역 식당가가 나왔다. 그 식당가에서 진아네 포장마차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포장마차는 사라졌고, 음식점으로 변해 있었지만 메뉴는 그대로였다. 아주머니의 푸짐한 정성이 담긴 왕 계란말이는 식당을 선전하는데  큰 무기로 작용하듯 큰 글씨로 적혀 창가에 붙어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간 그 곳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올 초에 가게를 옮기신 아주머니의 가게에는 아직도 국제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비롯해 단골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때만큼은 아니라는 게 아주머니의 말씀이다. 소주 한잔을 할까했지만 차마 그곳에 더 있기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후배들과 찾아오겠노라고 말을 하며 다시 용산 현장에 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휴일이어서인지 용산은 조용했다. 지나가는 차들만이 분주하게 이동할 뿐, 용산 현장 근처는 조용하다 못해 암울했다. 어느 인터넷 방송 기자가 노트북과 캠코더를 연결한 것을 정비하고 있었고, 분향소에는 고개를 숙이고 계신 상복을 입으신 유가족 분들이 계셨다. 감히 그 공간에서 사진 셔터를 터트리지 못했다. 묵묵히 그 분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어린이 날이라고 하는데. 주인이 바뀐 용산에서 그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며,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참고자료


한겨레 21 [제748호] 09.02.20 표지이야기 용산의 사각동맹

김왕배  '계급'과 '국가' 군력의 텍스트로서의 도시공간

조은 사당동 재개발지역에서의 현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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